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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직무로 오게 된 이유, 현직자의 이야기 | 무역인의 삶 #1

Roque Hong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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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되셨어요?

 

무역 관련 일을 하다 보면 살면서 가보기 힘든 곳들을 갈 일이 많다.
프랑스 파리 위성도시 어딘가에 위치한 공장이라던지, 체코 프라하에서 3시간 걸려 도착하는 폴란드 접경지라던지, 폴란드 바르샤바를 경유해서 들어가는 시골 어딘가라 던 지.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을 만난다.

흔하디 흔한 중소기업 무역팀 직원, 대기업, 공기업에 공무원부터, 해외에 거주하며 한국을 오가는 젊은 한인 사업가, 한국에 거주하는 해외 주재원, 온갖 브로커들까지.
이 일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을 자신만의 이야기와 삶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는 때로는 너무 평범해 따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드라마틱하기도 해서 잊히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다.

오늘은 그 많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기사는 하나도 없는 주제에 공학사는 2장에 학원 강사 7년에 고시까지 했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왔는지 풀어보자.

 

 

24살 8월 | 우물 안 개구리? ㄴㄴ 어항 속 붕어임.

 

24살 여름은 참 길었다.
작년 복학 이후 학원 강사로 취업했고, 학원 강사로 살아가겠노라 다짐했었다.
아 물론, 학원 강사치고는 굉장히 박봉이었다.
원래 다들 살면서 악덕 업주한테 잘못 걸려서 노예 생활 1-2년은 해보지 않나?
여하튼 그 바쁜 여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정확히 말하면 떠났다기 보단, 떠나게 되었다.

사실 돈이 있어서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당시 월급이 150만 원이었던 것 같다.
월세에 저축에 공과금 내고 뭐 하면 라면 한 끼로 하루를 버티던 날도 많았다.
4-50년 전 얘기가 아니라 악덕업주한테 잘못 걸린 대가다
당시 내 귀여운 월급으로는 유럽은커녕 남들 다 다녀오는 일본 여행도 어마어마한 사치였다.

학원에서 전 직원 복지를 핑계 삼아 억지로 끌고 간 단체 여행이었고, 사회생활에, 반쯤 강제로 끌려간 여행이었다.
모아 놨던 돈을 탈탈 털어 간신히 비용을 맞춰,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갔다.

그렇게 끌려간 여행은, 학원 강사로 삶을 마감하겠노라 다짐했던 내 좁은 시야를 말 그대로 찢어버렸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각종 예술품과 TV에서나 보던 수려한 건축물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우물도 아닌 어항 속에 있던 금붕어였다는 것을.

24년 8월 26일. 여행에서 다녀오자마자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아직 무역은,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머나먼 영역이었다.
당시 나는 영어 한 마디는커녕 토익 400점을 간신히 넘기고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 야경
해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당시에는, 해외 관광지에서 밤에도 잘만 돌아다녔다. 지금은 무서워서 못다님.

 

 

24살 12월 | 어쩌다 외국인 노동자 feat 필리핀

 

사직서를 내고 제일 처음 했던 일은 영어 공부였다. 
학원 수학 강사로 20대 절반을 써버린 내게 남은 거라고는 중, 고등학교 수학 지식뿐이었으니.
이런 내가 갑자기 넓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무슨 일을 하건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했다.
토익 407점에게 당시 취업 시장은 정말 잔인했다. 

다행히 토익 점수는 금방 900점을 만들었으나 곧 목표를 상실하고 말았다.
단순히 시야가 넓어졌을 뿐, 내게는 뭘 해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무슨 직업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아니, 뭘 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평생 직업으로 일찌감치 학원 강사를 점찍어놓고 살아온 내게, 학원 밖의 세상은 지나치게 넓었다.

그런 내가 필리핀 파견을 가게 된 건 우연과 여러 행운이 겹쳐진 결과였다.

당시 유학원에서 방학 기간 동안 초등학생들을 모집해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원래 TO가 없었지만, 등록된 인솔 인원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펑크를 냈고, 인솔 인원 중 한 명이었던 내 친구가 내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해외에서 근무라니!

다들 알겠지만 사실 토익 점수와 어학 능력은 별개다.
내겐 무적의 토익 점수가 있었지만, 토익 성적표가 내 입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여운에 절어있던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친구의 제안을 승낙했다.

내 업무는 필리핀 엔지니어들과 함께 지내며, 호텔에서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술적, 인적 지원을 해주는 일이었다.
당시 난 내 토익점수가 내게 저주를 내렸다 생각했다.
왜냐면 내 어설픈 영어 실력으로는 도저히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나는 총 6주를 한국말 몇 마디 쓸 일도 없이 처음 보는 필리핀 엔지니어들과 보내게 됐다.

필리핀 생활은 참 고난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대책 없이 따라나섰던 것 같다.
나는 주급 10만 원을 받는 파견, 임시 직원이었고,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호텔 밖 치안은 처참한 상황이어서 대낮에도 함부로 나갈 엄두를 낼 수 없었는데, 돈이 없던 나는 어차피 나가도 할 일이 없었다.

생활뿐만 아니라 업무도 문제였다.
한국에서 파견 온 직원들 사이에 마찰이 끊이지 않아 필리핀 엔지니어와 붙어 있는 내게 누구도 깊은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애당초 마주칠 일도 없었다.
당시 한국 파견 직원들은 같이 생활하고 일했는데, 기본적으로 필리핀 엔지니어와 생활하는 나는 주말 외출 시간이 아니면 그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당시 정말 "필리핀스럽게"일처리를 고집하는 필리핀 엔지니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하며 지내야 했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커녕, 외국인과 접촉조차도 드물었던 내게, 그들의 업무 처리 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온갖 사소한 말썽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리핀 엔지니어들을 설득하고, 그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해 온갖 컴플레인을 쏟아내는 한국 고객들과의 문화적 간극을 조율하는 데 사용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사소한 문화적 차이를 조율해 나간 시간들이 내가 처음 만난 무역이었다.

필리핀 세부 호텔 전경
필리핀 생활 내내 머물렀던 호텔 전경. 호텔 바로 앞도 밤에는 쉽게 나갈 수 없었다.

 

 

마무리 | 내가 하는 무역, 남이 보는 무역

 

물론, 필리핀에 다녀오자마자 무역 회사에 바로 취업해 커리어를 만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고난의 시간을 거친 끝에 3년이나 더 지나서야 철도 관련 제품 에이전시에 들어가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곳이 무역인으로써 내 첫 직장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무역인으로써 내 첫 경험을 물어볼 때면, 난 아직도 필리핀 이야기를 꺼낸다.

흔히 사람들은 무역이라 하면 잘 차려입은 정장을 입고 해외 출장을 떠나는 비즈니스맨을 상상하곤 한다.
이 일을 시작하고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옷 입고 해외를 다니며 빅딜을 이뤄 외화를 벌어오는 것으로 상상하는 사람이 많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정답도 아니다.

분명 해외 출장은 무역의 꽃이며, 중요하고 멋진 일이다.
하지만 무역일을 할 때 해외 출장이 차지하는 업무 비중은 뭐랄까, 코끼리 눈곱 정도로 작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 앉아 온갖 서류와 씨름을 하면서 보낸다.
내가 하는 협상의 대부분은 문화적, 지역적 차이에서 기인한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지, 소위 말하는 "빅 딜"같은 건 나도 영화에서나 봤다.

 

해외 출장, 어떻게 준비할까. feat 해외 출장의 현실 | 무역인의 삶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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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협상들은 너무 치졸해서 이걸 들고 며칠에 걸쳐 메일과 메신저로 싸우다 보면, 어마 어마한 허무감과 회의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동안 무역인으로 일하면서 해외를 오가는 멋진 글로벌 비즈니스 맨을 꿈꾸고 들어와 그 허무함에 회사를 떠나 다른 일을 찾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무역의 진정한 모습이다.

작은 문화적 차이와 이해관계를 조율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그렇기에 누구나 선망하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는 일.

우아한 백조가 물 밑에서 미친 듯이 발을 굴리는 것처럼,
해외 출장을 다니며 다른 사람의 선망과 부러움을 한 목에 받는 나는,  오늘도 사무실 안에 박혀 그 누구보다도 치졸하고 쪼잔한 갈등을 해결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이 치졸한 싸움을 버티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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